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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1-17 16:20
주차장 보살
 글쓴이 : 白陽
조회 : 4,573  
최근 한달 정도에는 그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겨울이라 추워서 잘 나오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나다니는 시간과 녀석이 출몰하는 시간이 서로 잘 맞지않은 탓인지 잘 알수가 없다.
그러나
겨울이 되기전에는 자주 주차장에서 만날수가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날씨가 추워진 탓이거나, 그도 아니면 훌쩍 이사라도 가버린 것인지 모를 일이다.

"주차장에 차 닦아 주는 아이 있잖아요..."하고 어떤 아줌마가 자기 남편에게 말을 건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 차를 잘 댈수 있도록 다른 차를 밀어놓았다고 하던데, 착하더라구요"
이 말은 녀석이 지하 주차장에서  차들이 주차하기 좋도록 다른차들을 적당히 밀어서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는 뜻이다.
그 아줌마는 정말 무심하고도 속 편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태도에 내 마음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번져났다.
착하다고 한말이 담보되기는 했지만 녀석을 조금만이라도 더 자세히 들여다 보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였다.

"아줌마 그 아이 차 닦는 아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아 버렸다.

그 아줌마의 말을 들어보면 이미 그 녀석이 차를 닦는 것을 최소한 몇차례라도 목격을 한 듯 하다.
그러나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닦아주는 아이를 고용한 아파트가 쉽지 않듯이, 내가 사는 이 서민 아파트 주차장에서 아무 차나 닦고 있는 그 녀석이 고용된 아이가 아닐 것 정도는 알아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 아이가 차를 닦는다는 것을 최소한 몇차례나 목격을 했다면 말이다.

내가 주차를 하고 있는 사이에 이 "차 닦는 아이"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올 겨울 들어 오랫만의 모습이었다.

"어디 다녀 오셨어요?
잘 보이지 않든대요.
차는 갖고 다니세요?
ㅎ 회사 차라서 좋은 것이지요?
그 회사 차 좋지요?
중형차라서 그렇지요?"

"춥지 않니?
감기 조심해라"

우리의 대화를 유심히 들어보면 알겠지만 녀석은 발달 장애가 있는 친구다.
20대 중반 정도.
우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이다.
겉으로 보면 아주 멀쩡하게 잘 생겼고, 그 차림이나 행색에서 누구라도 쉽게 알수 있을만치 부모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같다.

머리는 항상 제때에 이발을하고 다니고, 건강한 혈색과 차림은 가정 형편이 좋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있다.

비록 대화는 불편하고, 중간 중간 제 할 말만 하고 있는 녀석이지만 심성이 아주 고운 것은 퍽이나 다행이다.
만약 부모가 사랑을 주고 있지 않다면 이런 경우 그 상황이 거울처럼 들어날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녀석을 알게된 것은 삼 사년전의 일이다.
그 어느 날
지금은 은퇴를 한, 수원에서 우리 아파트 까지 출근을 하던 나이 많은 관리인 아저씨의 말을 통해 녀석의 내력을 다소나마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차의 본넷에 난 새로운 흠집을 보고 있었다. 
페인트가 제법 벗겨져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하고 있는데, 그 때 관리인 아저씨가 다가왔다.

"흠집이 난 모양이지요?"
"네 어제 차를 대어 놓을 때는 없었는데,  밤사이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누가 흠집을  낸 모양입니다."

그때, 나는 그 날도 열심히 차를 닦고 있던 녀석을 돌아 보았다.
내 시선이 녀석을 의심하는 것으로 보였든지 관리인이 말했다.

"저 아이는 아닙니다."
"녜? 아 ...저..."

내 말을 들을 사이도 없이 관리아저씨는 말을 이어 갔다.
"저 아이는 착해서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아, 네 그런데....저 아이는 저렇게 종종 차를 닦고 있던데요"
"예, 자기 부모님들이 아무리 말려도 저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아이는 결코 나쁜 짓을 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그 날부터 이 녀석을 유심히 보기시작했다.
그리고
자기네 차뿐만 아니라, 다른 집 차도 닦고 있다는 것을 그제사 분명히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이 녀석을 처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그 날보다는 더 이른 때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자기 집 차를 닦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고, 나중에는 차를 자주 닦는 사람이다 라고만 여겼을 만치 관심이 없었다.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그저 내 차를 주차하고 나면 주차장을 빠져 나오면서 일하고 있는 녀석을 멀리서 보기만 했을 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날 이후,
녀석은 나 한테도 말을 걸기 시작했다.
성의 껏 대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대화에는 한계가 있었고, 기본적인 대화내용 이상 발전은 불가능 했다.
그래도 우리는 만날 때 마다 그 좁은 한계내에서라도 대화를 했다.
녀석의 영혼은 온전하게 내 뜻을 알아줄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자 나는 녀석이 차주 모르게 자신의 마음에 드는 차를 골라서 세차를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또 이런 불의의 세차로 인해 차주들에게 항의를 들었는지 상당히 조심을 하는 눈치였다.
짐작 할수 있듯이 녀석의 세차란 왁스칠을 한다든지하는 류가 아니고,물세차라고 하더라도 골고루 제대로 하는 그런 세차가 아니다.

자기 기준에서 다했다고 여기면 멈추는 수준이라, 완벽한 세차가 될리가 없다.
그러므로,세차를 잘하고 왁스라도 입힌 차에다가 이 녀석이 다시 시원치 않은 물세차를 한다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것은 당연하다.
아마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난 것같고,녀석의 부모들은 이로인해 항의를 받은적이 있었던것 같다. 자연 녀석에게 압력이 가해지고 그로인해 이 물놀이도 그다지 쉬운일은 아닌 그런 형편이었다.
상당히 조심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었다.

관리인 아저씨는,녀석의 부모로 부터 자기 아들이 지하 주차장에서 세차를 하면 말려주시던지 아니면 즉시 연락이라도 해달라고 하는, 그런 부탁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좋은 관리인 아저씨는 손주 뻘되는 녀석이 안 스럽게 여겨져서인지 특별히 문제가 일어 나지 않는한 내벼려 두는 것 같았다.
어쩌다가 세차를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 그 날부터 나름 자신의 세차장을 운영하고 있는 녀석의 유일한 즐거움을 매정스럽게 뺏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세차 세례를 당한 사람들의 느낌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드디어 나도 그 문제를 실감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차를 청결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평소 차는 그다지 깨꿋하지 못한 편이다.
그러므로 내 경우에는 변이 아니라 은총을 받은 쪽이라고 할것이다.

검은 차는 말할것도 없고 흰색의 차라고 하더라도 제 때에 세차를 하지않으면 먼지가 자욱하다.
흰차는 먼저 회색차로 변하고 다시 검댕이로 변해가는것이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며칠 세차를 하지 않은 차라면 어느 것이라고 하더라도 밴지르할 리는 결코 없다.

처음에는 회색차에 길들고 다음에는 검댕이 차에 길들어져 가면서, 언제라도 비가 올날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것이 나의 게으런 행동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렇지 않아도 회색차가 되는 속도가 다소 느리다고 만 여기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게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분명히 전 날의 비로 인해 전조등에 눈물자욱이 난 차가 세수를 말끔히 하고 있는것이다.
중국에서 날아온 황사로 인해 먼지가 유독 많았던 다음 날에 어줍잖은 비가 왔었고, 그 덕에 차는 세차가 되는것이 아니라 많이 운 여성의 마스카라 처럼 되어 있었던것인데....

그 마스카라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결코 내가 세차를 한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한 것인가?
이 조화는 무슨 일인가?

많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 간 차가 회색차로 변하는 속도에 미세한 문제가 있었던 것의 의문까지 저절로 풀어졌다.

난 화를 낼 처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콧노래를 부를 입장도 아니었다.

이후
차의 본넷을 보니 너무 열심히 닦은 덕분에 기스가 나 있는 것도 발견 했지만, 나는 종종 고물이 다 된 내차를 갖고 세차를 하면서 즐겁게 노는 녀석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말려야 들을 리도 없었지만 항의보다는
감사를 해야 할,게으런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녀석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할수 있을까 그것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냥 고맙다고 한다면 나의 차는 사흘이 멀다하고 세차를 당하여 온통 기스가 날 것이며,  녀석의 어려움을 이용하는 사악한 인물이 될것이 틀림없었다.
날 이 추워지기 시작하자 이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말려야 하는데 말리자니 녀석이 죄악감을 가질것이고, 말리지 않자니 마음이 무거워 견딜수가 없었다.
먹을것이나 장갑이라도 사준다면 이 녀석은 더 열심히 세차를 해댈것이며 그것은 나의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만약 녀석이 그런것들을 들고 부모님에게 보인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어떤 형편이 되고 말것인가.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모두가 같은 것이다.
분노와 슬픔과 그 모든 인간적 감정이 버무려진 그런 마음을 어떻게 모를리가 있겠는가?

이렇게 몇번의 세례를 알게 모르게 당하고 난 뒤,
나는 아주 부지런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다.
일단 바쁜것을 핑계삼아 직접 세차는 못하더라도 주유소에 붙어있는 기계세차장 에라도 자주 가게 된 것이다.
세차가 되어있는 깨끗한 차를 다시 세차하지는 않을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말이다.

그의 부모님이 가지는 마음이나, 다소 마음에 들지 않은 세례를 받은 다른 차주들이 어떤 생각들을 가지더라도 나는 녀석을 다르게 보고싶다.
녀석은 보살이라고 말이다.

원래 보살이란 자신의 성불을 잠시 뒤로 미루고 다른 사람들을 먼저 성불할수 있도록 돕는다는 위대한 마음을 가진 존재다.

비록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고는 하지만, 또한 자신의 재미를 위해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녀석은 큰 공덕을 쌓고 있다는 생각이든다.
저 하늘 나라에는 누구에게나 자기 만의 창고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선한 일을 하면 선한 업의 공과로 그 만큼의 곡식이 쌓이는 곳간 말이다.

녀석은 그 자신 만의 곳간에 많은 곡식을 쌓고 있을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 됨이 없이 오직 더러워진 차를 보면 즐거운 마음으로 세차를 하는 그 어진 행위는 보살의 모습이 아닐수 없다.

내새에는 그 어진 마음의 과보로 훌륭한 사람으로 태어날것이 분명한,우리 아파트 주차장의 어린 보살의 앞날이 행복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또한
녀석의 심성이 그토록 곱게 길러준 부모님들의 노력에 대해 크다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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