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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6-16 16:45
똥 막히는 책
 글쓴이 : 白陽
조회 : 3,729  
불교 단체에 속한 젊은이 하나가 군대의 징집영장을 받았다.

송별회를 해준다는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도 먹어보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도 아니건만 그간 못해 본 일탈적 작단들을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저질러도 보았다.
그러나
자고나도 자고나도 거대한 장벽처럼 다가오는 당면사의 부담은 전혀 줄지도 않고, 죽을(?)각오는 여물지를 않았다.
 

드디어
훈련소에 입소할 날짜가 바짝 다가와서, 안경 잃어버린 근시가 책 보듯한  즈음이었다.
온갖 수작을 다해 본 관계로 별 아쉬움은 남지 않았지만, 한가지 염려가 있었으니 그것은, 제대까지의 긴긴 시간을 빠르게 지나가게 하는 묘책을 찾는 것이었다.

흔히 제법 먼 거리의 나들이에서 차 중에 책을 본 다면, 맹숭거리고 앉아있을 때 보다는 시간이 잘 갔던 경험은 누구나 해본 적이 있다.
 바로 이런 것과 같은, 좋은 방법은 없을까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아니면 최소한 그 시간을 보람되게 보내는 방법이던지....

 영어단어 외우기를 한다던지 하는 기특한 생각따위는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선배와 친구들을 통해 익히 들은 바 있기 때문에 이것은 처음부터 제외 해 버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궁하면 통하는 법이라더니.
결국
오줌을 참아가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한 기특한 발상을 하게 되었다.

그는 마치 깨달은 자 처럼 외쳤다.
"그래, 벽암록!(碧巖錄)"

벽암록이라,
 
그 옛날,
중국에서 깨달음 앞에 목숨조차 초개같이 내던지던 선승들이 남긴 보물들에다,  원오극근(圓悟克勤)과 설두중현(雪竇重顯)의 견해가 첨가된 것이다.

말과 글을 내던지고 맨손으로 물속에서 달을 건지는 선승들에게 교과서 아닌 교과서가 이것인바.
백가지의 숨이 멎는 소리가 준비되어 있는 탓으로, 어지간한 스님들도 읽다가 책꽂이에 쳐박아 놓기 일수인 바로 그 책이다.
어쨌거나 다른 책처럼 훌훌 읽어 나가려다간, 내 디딘 첫 발에 수십척 벼랑으로 나가 떨어지기 꼭 좋다.


한 구절에 코를 꿰여 십년 이상을 헤맨 정도는 예사라고 함에, 백가지 화두가 그 속에 있으니 복무기한 정도는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지나갈 것이 분명한 것이다.

오호라! 이것이다.
도랑 치고 가재를 잡는다거니, 노는 입에 염불이라고 하지 않던가.
고된 시간이라 하더라도 그 어느 한구절에 제대로 코가 꿰인다면 군 생활은 KTX 앞에 십리길 이다.

이런 기특한 생각을 흉중에 품은 이 젊은이는 벽암록 한권을 가방에 집어넣고 표표히 훈련소를 향했다.
  훈련소 생활에서야 자고나면 훈련이고 숟가락 놓으면 훈련이니, 그 비장의 카드를 흘겨 볼 시간도 없었지만  드디어 자대에 배치를 받게 되자
틈틈이 책을 들여다 볼 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전혀 뜻밖의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 날 따라 운도 좋게 초저녁에 보초근무를 마친 이 졸병은 한 참 단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공짜 비디오가 한 순배 돌아갔나 하는 순간,
내무반 문짝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말년 병장이 쳐들어 온것이다.
그리고 기차 화통 삶아먹은 소리로 단 잠이 든 졸병녀석을 찾았다.

"야 임마 김 이병, 김 이병!  당장 일어나지 못해?"
"넵 김 이병"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
불 벼락을 맞은 졸병은 후딱 이불을 걷어차고 작대기 한 쪽을 누른 것 처럼
벌떡 튀어 올랐다.

"너 임마, 온천지에 법이 없는데 마음을 찾을 곳은 어딘지 말해. 빨리~~~"

말년 병장은 마치 매운 고추라도 먹은 양 새빨개진 얼굴로 분기 탱중, 졸병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벽암록에 실려있는 "삼계에 무법인데 어디서 마음을 찾는가"란 화두였다.

"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뭐야 이 자식, 그것도 모르면서 이 따위 똥 막히는 책을...."

아! 그랬다.
말년 병장
그는 지독한 변비 환자였다.

평소의 그는
지난한 배변과정을 견뎌내기 위해서 신문이나 잡지등 벼라별 심심풀이를 다 들고 다녔는데, 워낙 근무시간이 길다보니 그만 근처의 활자들은 다 외워 버렸고 오직 한 가지 뉴 페이스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신참 녀석이 틈틈이 들여다 보고는 덮어두고 덮어두고 하는 매우 심상치 않은 책, 바로 벽암록이었다.

마침 모처럼 발동이 걸렸을 때,
신참은 잠이 들었고 하니 따로 허락을 득하기도 그렇고 그냥 이 뉴페이스를 들고 화장실을 향해 룰루랄라 걸음을 재촉 한 것이다.
그런데
아뿔사
이 책이 어떤 책인가?

한구절 한구절이 명문장인데, 중생이 알아먹긴 매우 힘든 말씀들이다.
역사에 이름이 혁혁한 상승 근기를 타고난 사람들조차도 처음에는 꼭지가 돌아서 혀를 뻬물었다는 것 아닌가 말이다.

"으악, 으악"

말년 병장의 머리속을 한 번 파고 든 화두의 요상한 구절은 그의 사정을 매우 곤란하게 만들고 말았다.
모처럼 제대로 발동이 걸렸다 싶었던 변의는 감쪽 같이 사라져 버리고 남은 것은 엄청난 불편함 뿐이었다.

전쟁도 아닌데 피는 낭자하고 .....
거의 목숨만 부지한 체 바지를 움켜지고 달려온 말년 병장의 심정은 참으로 처참한 것이었다.
대개의 변비환자들이 그렇듯이 그 또한 신경이 매~~~우, 예민한 사람.
벽암록은 차라리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답을 알아내지 않는 한, 결코 평화는 없다.
아무리 잊어버리려고 해도 새록 새록 떠오르는 야속한 말씀.

"만가지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
"으아악, 으악 차라리 죽여라."

원래, 황룡을 낳는 산부인과지만 참으로 처절하구나~~

이 사건은 일파 만파로 번져간다.
임무가 발동되면 바로 출동해야 하는 것이 군인의 길.
평소 제 때에 볼일을 못보고 변비를 만들어 놓았던 다른 백성들 까지 이 스토리를 듣자 즉시 전염되는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결국 군대내의 절,
군법사까지 동원이 되었지만, 이 젊은 스님 아직 한 참 공부중인 지라 답답하긴 여기도 마찬가지, 그간 적당히 경문 해석으로 체면을 유지하고 있다가 한 번의 불심검문에 모든 것이 들통이 났다.
게다가 딱한 것은 이 절박한 상황에 그도 그만 변비가 되고 만 것이다.
 

노장스님이 제자의 공부를 위해 멱살을 잡고 화두의 답을 재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다만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멱살드잡이를 하는 사건이라니....
이제 사태는 매우 험악해져서 저촉된 인물중 누군가가 하루라도 빨리 화두를 풀어 견성성불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대절명의 지경에 당도하고야 말았다.

아무리 사정이 어렵다고 해도 다른 막중한 군무를 제쳐 놓을 수야 없는 것이지만, 이 구석 저 구석 그저 틈만 나면 노력들을 한 끝에 이 축복받은 부대는 그로부터 얼마되지 않아 상당한 숫자가 성불을 했다는 말이 들려온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어디 한 번 제대로 변비에 걸려보려는가?
백가지 화두가 와르르 웃는다.
어마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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