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저장 자동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찾기
 
 
작성일 : 08-06-13 00:13
화랑외사 : 물 계 자(勿稽子) - 01편
 글쓴이 : 편집부
조회 : 3,109  



[사진: 성덕대왕신종-비천상]


출처: 화랑외사(김 범부저)중 물계자편에서


물 계 자(勿稽子) 

 

물계자는 신라 제10세 내물왕 때 사람이다.  

 

신라 시대 많은 위인 중에서도 더욱 뛰어난 사람이었으나  

사가(史家)의 기록은 너무나 초초(草草)하다.  

그것은 史家의 잘못이기 보다 오히려 물계자의 인물이 엄청나게  

비범했기 때문이다.  

 

대체 역사상 인물로서 어떤 종류의 사람은 實力 이상으로  

과장하는 수도 있고, 어떤 종류의 사람은 실력보다 줄여져서  

전해지는 수도 있다. 이를테면 백 근 드는 힘을 가진 사람이  

백 근 짜리를 들 기회를 얻게 된다면 그 때 그 실력은 정당하게 

발휘될 것이지만, 천근을 들 수 있는 사람이 이백 근이나 삼백 근  

혹은 팔백 근을 들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온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당한 기회는 못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백 근이나 이백 근을 들 수 있는 사람은  

흔히 그 정당한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천근이나 이천 근을  

들 수 있는 사람은 평생을 두고 그 온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수가 많다. 

 

물계자는 그 힘이 천근인지 이천 근 인지, 혹은 그 이상 몇 천근인지 

알기 쉬운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물계자는 평생을 두고 자기 힘 

보다는 너무나 거리가 먼, 말하자면 백 근도 채 못 드는 기회밖에는 

얻지 못한 편이었다. 그러므로 역사의 기자(記者)가 그 실력은  

기록할 길이 없고, 그 든 바가 얼마 되지 않은 채 그대로만  

기록하게 되는 것인데, 이런 궁금한 일은 물계자 뿐이 아니라  

고금(古今)을 두고 그 수효가 적지 않을 것이다.  

 

실상 물계자는 역사의 전면(前面)에 나타난 몸보다 그 배면(背面)에 

숨은 몸이 무릇 몇 배나 될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의 몸이란 그 어느 부분이든지 기실은 그 전체의 성격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니, 이를테면 그 눈 하나도 그럴 수가 있다.  

누구나 그 눈과 그 손을 자세히 살필 수만 있다면 그 전체의 성격을 

아주 알 수 없는 것 것만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 물계자의 손이나 눈은 그나마 역사의 전면에 흐릿하게 

나타났을 뿐이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물계자의 자손인지라 우리의 

호흡과 혈맥은 이따금 물계자의 그윽한 회포(懷抱)를 느껴 아는것이다. 

 

물계자는 아무 이름도 없는 집 사람이어서 그 교류하는 친구들도 

무슨 노력이 있거나 유명한 사람은 그리 없었다.  

그 식견은 비범하고 그 도술은 신기했지만 그리 배운 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평생에 좋아하는 것은 검술과 음악인데  

그것 또한 별로 배운 데가 있었던 것이 아니며,  

그저 타고난 천분이 이런 것을 좋아했고, 또 좋아 하였으므로  

부지런히 쉬지 않고 공부하는 동안 신기한 묘리(妙理)를 두고두고  

혼자서 깨쳤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을 좋아 한 것도 무슨 특별한 익망(翼望)을  

가졌던 것보다 첫째는 그냥 좋아서 한 것이고 그보다도 오히려  

심심풀이로 했던 편이었다.  

심심풀이란 말이 났으니 말이지 물계자처럼 심심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물계자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모두가 물계자에게 

배우려 하는 사람들이고 물계자를 알아 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물계자는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무도 자기를 몰라 주는 데 대한 

불평이라곤 조금도 없었으며, 오히려 누가 자기를 아는 체 하는 때는 

차라리 그것을 옳게 여기는 기색이 아니었고,  

또 옳게 여기지 않는 것이 과연 옳았던 것이다. 

 

이러고 보니 절로 심심한 때가 많았고 심심한 때면 의례 칼을 

만지거나 혹은 거문고를 안고 앉는 것이 평생의 버릇이었다. 

심심한 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 마땅치 못한 말을 듣거나 세상에 

걱정스러운 소문을 듣거나 하는 때는 칼을 가지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칼춤을 추든지 그렇지 않으면 거문고를 끼고 시내 물가로 가든지 

하였으며, 그래서 어떤 때는 낮에 나가면 밤에 들어 오거나 밤에 

나가면 아침에 들어 오거나 하는 수가 한 두 번이 아니어서 물계자의 부인은 남편을 아끼는 마음으로,  

 

“아무런 일이 있더라도 제 끼니나 잡숫고 잠이나 제대로 주무실 

일이지,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그러면 어디 속타는 사람은 없나요.“ 

 

하고 은근히 나무란 적도 있었다.  

그런 때는 평소에 말없는 물계자인지라 

 

“글쎄, 그 말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요.” 

할 뿐 별반 시원한 대답을 하려 들지도 않았다. 

 

이렇게 태연한 물계자연만 그 젊은 때는 가다가 사나운 일도 있었다. 

가까운 부락에 아주 부량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힘이 장사요, 

게다가 그 근처에서는 검술(劍術)도 짝이 없었다. 그래서 어떠한 것을 

하든지 그를 당적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세상이 쉬운 것이라 생각한 이 어린 영웅은 못 할 짓이 없어 사람을 

쳐 죽이기도 했고, 좀 얼굴이나 예쁜 계집이면 그것이 누구의 아내거나 

뭣이거나 그 남편이 보거나 말거나 불구하고 제 하고 싶은 짓은 

끝끝내 다 해내고야 말던 것이었다. 

그 때 물계자는 이 세상에 적수 없는 영웅을 찾아 가서  

처음에는 좋은 말로  

 

“그 좋은 힘과 좋은 술법을 아껴 두었다가 천하를 위해서 환란을 

덜어주는 것이 장부의 할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타이르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그 사람에게 이러한 점잖은 말이 

귀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그래도 물계자는 다시 정색(正色)을 하고는 

 

“옳은 말을 들을 귀가 없으면 허는 수 없이 다른 법으로 듣게 할 수 

밖에... 하였다.” 

 

그러자 그 영웅은 크게 웃으며 웃통을 벗고 주먹을 칼처럼 들고서는 

 

“너 이거 아느냐?” 

 

하고 물었다. 물계자는 오히려 몸을 뒤로 지쓱하게 버티며 되물었다. 

 

“네가 그것을 아느냐?” 

 

그러자 그 영웅은 두 눈에 불을 흘리면서 벼락같이 바른편 주먹으로 

물계자의 가슴을 쳤다. 그 때 누구나 보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물게자는 그 자리에 부서져 해골이 남았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그 주먹을 치던 영웅은 도리어 제 주먹이  

탁 풀린 채 땅에 나꺼꾸러졌다. 그 때 물계자는 몸을 바로 잡으면서 

 

“아까처럼 주먹을 다시 들어! 들지 못 하면 죽어!” 하였다. 

 

팔목이 부러진 가여운 영웅은 이것이 과연 영웅의 말로라고 

생각했는지 슬픈 목소리로 

 

“이대로 죽나?” 하였다. 

 

그러나 팔목은 부러졌을망정 그래도 장사인지라 성한 두 다리를 

믿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는 힘차게 일어섰다.  

일어서자 마자 벼락 치는 소리가 나면서 다시 자빠졌다.  

그 때 한 쪽 발목이 또 부러진 것이다. 바른 편 손목과 왼편 발목이 

부러진 말로의 영웅은 그제서야 잔명이나마 살려 줍시사고 빌었다. 

물계자는 자리를 고쳐 앉고는 점잖은 목소리로 이렇게 타일렀다. 

 

“이 불쌍한 놈아, 약한 놈이면 약한 놈인 채 남의 집 머슴 노릇이나 

할 것이지, 이놈아 글쎄, 그 낙지 발모갱이 같은 뼈대를 가지고  

분수없이 덤벼. 그러나 너를 살려 줄 터이니 남은 한 팔과  

한 다리라도 가지고 죄짓던 부락으로 가서 두고두고 죄 닦음을 해!“ 

 

이런 일이 있은 뒤로 그 근처에는 부량한 사람이라고는 자취가 

끊어졌을 뿐 아니라, 모두 물계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시나위 잘 부르기로, 거문고 잘 타기로, 춤 잘 추기로, 말 없기로 

유명했지만 이렇게 絶人之力이 있었던 줄은 아무도 몰랐던 만큼,  

모두 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놀란 나머지 이야기 꺼리가  

안 될 수 없었다. 

 

그 부량한 사람으로 해서 해를 입은 부락 사람들 중에 이 일을 

통쾌하게 감사하게 생각했던지 오새끼진 암탉을 두어 마리씩 묶어서 

안고 오는 사람, 온 마리 돼지를 삶아 오는 사람, 고운 세목필을 끼고 

오는 사람, 익은 홍시나 오툴이 알밤만을 한 짐씩 지고 오는 사람들이 

문전에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물계자는 이러한 사람이 오는 족족 

호령을 해서 쫓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 부량한 사람을 처치하는데 그 때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일이언만, 

그 뒤 간혹 병신된 자의 소식을 들을 적마다 물계자의 마음  

한 구석에는 오래 두고두고 오히려 심하게 했다 하는  

한 가닥 뉘우침이 가시지 않았다.  

[물 계 자(勿稽子) - 02편에 계속...]




 
 
 

 
 
이용약관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강남구 역삼동 826-30호 강남유스텔 901호 TEL : 02)563-0801 FAX : 02)563-0825
선인사회 Copyright 2008 suninsociety.com All right reserved       E-mail : master@suninsocie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