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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6-23 16:14
풍류정신-丹學(단학)과 仙道(선도)
 글쓴이 : 편집부
조회 : 4,505  
출처: 풍류정신(김 범부저) 제3부 陰陽論(음양론)
제12장 丹學(단학)과 仙道(선도)



 精 ・ 氣 ・ 神(정 ・ 기 ・ 신)을 말하기로 하나 간단히 설명될 수는 없다.  

먼저 丹學을 알아야 한다. 

丹에는 外丹(외단), 內丹(내단)이 있다. 물질을 빌어 된 것은 外丹이요,  

精 ・ 氣 ・ 神(정 ・ 기 ・ 신)으로 된 것은 內丹이라고 한다. 
 

外丹은 丸藥(환약)을 사용하는 것인데 漢代(한대)의 진시황이나 晋・六朝( 진・ 육조) 

시대에성행하였다. 특히 金石之材(금석지재)를 많이 사용하였었다. 

《雲笈七籤百卷 (운급칠첨백권)》이 南宋(남송)시대에 된 것으로서 丹學을 체계화한 것이다. 

또 《參同契(참동계)》는 東漢人 魏伯陽(동한인 위백양)의 저서로서 丹學에 관한 것으로는  

최초의 것이다.  

 다음으로 《抱朴子(포박자)》가 있는데 그는 神仙術(신설술), 醫術(의술),  

丹學(단학) 등을 많이 말하였다. 이는 東漢末(동한말) 晋代(진대)사람인 葛洪(갈홍)의  

저서이다. 

《黃庭經(황정경)》은 唐代(당대)의 것이나, 그 후에 더 좋은 것이 많다.  

《金丹百字註(금단백자주)》가 가장 요령 있게 된 것이다.  

작자는 唐代(당대) 혹은 宋代(송대)의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신선’이란 무엇인가를 알아 두어야한다.
신선의 仙道(선도)는 한국에서 발생하였다. 


 중국의 上代(상대)의 문헌에는 신선설이 없다. 十三經(십삼경) 중의  

《老子(노자)》에도 없으며 춘추시대까지도 없었다. 《莊子(장자)》에 비로서 선인,  

神人說(신인설)이 비치고 《楚辭(초사)》에 나왔는데, 이는 전국시대에 해당된다. 

 

 仙은 人邊(인변)에 山자 또는 僊(선)자로 쓰는데, 산에 사는 사람 또는 인간 세상에서  

遷去(천거)한 사람이란 뜻의 會意(회의)문자이다. 곧 山人이다.  

仙의 音이 ‘센’이니, ‘새이’는 무당을 말하고 경상도에선 ‘산이’가 무당이다.  

 그러므로 ‘산이씨자 무당의 씨자’라고 하는 속담이 있고, 땅재주하는 사람이  

‘아우구 산이로구나’하는데 이것은 降神(강신)하는 데에 쓰는 소리이다.  

이 ‘산이’니 ‘센’이니 하는 어원은 근본 ‘샤만’에서 온 것이다.  

몽고계에서 전한 샤만은 곧 무당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몽고계의 고대문화와 공통성을 가진 神道思想(신도사상)에서 온 것인데,  

무당 중에서 강신이 잘 되는 이를 ‘사얀’이라고 하며 신 집히는 사람도 ‘사얀’이라고 한다.  

센, 새이, 산이, 이 모두 샤만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러므로 花郞(화랑)을 國仙(국선)이라고 하고, 花郞史(화랑사)를 仙史(선사)라고 하며,  

花郞道(화랑도)는 風流道(풍류도)라고 하였다. 

 

 화랑은 神官(신관)으로서 그 지위는 사회적으로 최고위였으며, 風流道(풍류도)는 국교였다.  

화랑도는 그 당시 하나의 종교로서 그 영도자가 ‘도령’이며 그 단체를 ‘낭도’라고 하였고  

평시에 종교적 수련과 음악, 무당, 무술 등을 수련하였는데 음악, 무용은 신과 교재하는  

의식으로서 사용된 것이다.  

 

 그것이 뒤에 불교, 유교가 들어오면서 그 권위를 잃게 되어 무당은 사회적으로 천민 계급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당초에는 인도의 바리문이나 가톨릭의 신부와 같은 지위였던 것이다. 

그 뒤에 이 사얀이 중국으로 들어가서 한자로 선이 되고 또는 신선이라고 하여  

詠歌舞道(영가무도) 하였다. 

 진시황 ・ 한무제가 접촉한 사람은 海上燕齊(해상연제)의 士(사)라고 한 바, 지금의  

山東省(산동성) ・ 直隸省(직예성) 사람들이며, 그들은 근본 요동에서 유입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方士(방사)’라고 하여 제왕들이 존숭을 하였는데, 진시황 ・ 한무제가 신선을  

東海(동해)에서 구하고 東海(동해) 중에서 三神山不死藥(삼신산불사약)을 구하는 등  

모든 신선의 本據(본거)를 요동의 동쪽인 海東(해동)에서 찾았던 것은 그 證左(증좌)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 산에는 신선대 신선바위 등이 도처에 있다.  

그것은 고대 신관들이 입산 수도하였고 산을 神山(신산)으로 하였으며,  

산에서 수행하는 샤만이 곧 선, 신선이었던 것이다.  

그런 민족적 전통과 습성이 생리화되어 유교를 숭상하는 이조 시대에도 유학자는 


[사진: 국보68호 청자상감운학매병]


[사진: 鶴衣(학창의)]
 

 산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程子冠 (정자관)에 鶴衣(학창의)를 입고,  

거문고를 하며 시를 읊고, 茶藥(다약)을 마시는 생활을 즐기며 탈속한 風潮(풍조)를  

사랑하는 등 모두 神仙風味(신선풍미)이었다.  

또한 琴書詩畵(금서시화)를 좋아하는 풍취며 골동품 도자기 애호 등도 바로 그런 것이다.   
 

 이 같은 神仙情操(신선정조)는 어떠한 시대에 갑자기 산출된 것이 아니라, 

벌써 3,4천년 이전에그 基地(기지)를 잡아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抱朴子(포박자)》에도 黃帝(황제)가 靑邱(청구)를 지나다가 風山(풍산)에 

이르러서 紫付眞人(자부진인)에게 三皇內文(삼황내문)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유서가 있는 이야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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